유연하다는 말이, 왜 내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까?
누구에게는 이상적인 제도로 여겨지는 유연근무제가, 정작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갑작스럽게 바뀐 출퇴근 시간, 설명 없이 내려지는 근무지 변경, 매일 달라지는 스케줄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보다는 삶의 리듬을 흐트러뜨린다.
특히 동의 없이 이뤄지는 변화는 제도적 이점보다도 심리적 피로와 혼란을 앞세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왜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법과 규정 이전에, 내가 일하는 방식과 그 안에서 지켜야 할 균형을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진다면 유연근무제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본문에서는 일방적 근무 조건 변경의 현실을 돌아보며, 갈등이 아닌 대화를 통해 성장하는 가능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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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근무제 강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변화는 때때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특히 일터에서의 변화는 개인의 삶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출근 시간, 퇴근 시간, 업무 방식이 바뀌는 일은 작은 조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람의 삶의 리듬 전체를 흔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연근무제’라는 이름 아래 일어난 변화들은 종종 ‘서로를 위한 조정’인지, 아니면 ‘일방적인 요구’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 글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 관계를 지켜낼 수 있는지를 다룬다.
근무시간, '변경 가능'보다 '함께 논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최근 한 직장인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마주했다. 입사 당시 명시된 9시부터 18시까지의 근무 시간은 어느 날부터인가 ‘유연근무제’라는 이름 아래 바뀌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9시부터 20시까지, 또 어떤 날은 9시부터 16시까지. 표면적으로는 '유연한 제도'였지만, 당사자의 동의나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되었다.
여기서 질문은 생긴다. 이 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유연근무제는 원래 일과 삶의 균형, 자율성의 확대,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대화 없이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유연이 아니라 변형이 되고, 자율이 아니라 통보가 되며, 협력이 아니라 지시가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예측 불가능성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사전에 조율된 시스템에서 일하던 사람이, 예고 없는 변화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잃는 경험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존중의 결핍으로 인식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불복’이 아니다. 필요한 건 ‘대화’다. 그리고 그 대화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말할 수 있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
유연근무제 강요 속에서 '나의 욕구'를 말하는 법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는 비폭력대화(NVC)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말한다. “모든 분노의 밑에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다.”
근로자가 느끼는 분노나 불만 역시 마찬가지다. “왜 내게 말도 없이 바꾸는 거야?”라는 외침 속에는, ‘미리 알고 싶다’, ‘일정이 흐트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함께 의논하고 싶다’는 핵심 욕구가 있다.
비폭력대화는 이 욕구를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바람을 구조화해볼 수 있다:
- 관찰: 최근 들어 근무시간이 사전 설명 없이 자주 변경되고 있습니다.
- 느낌: 이로 인해 예측이 어려워지고, 피로감과 당혹감을 느낍니다.
- 욕구: 저는 일관된 일정을 통해 스스로를 관리하고, 균형 잡힌 삶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 요청: 향후 근무시간 변경 시, 사전에 충분히 협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말은 조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더 유기적이고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정중히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은,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게 만든다.
법은 보호하되, 말은 다리를 놓는다
노동법적으로 볼 때,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 없이 근무시간을 변경하는 것은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 근로기준법 제93조는 이 같은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고용보험법에서는 근무조건 변경으로 인한 자발적 퇴사 역시 실업급여 수급 사유로 인정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의 보호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그 이전에 나와 조직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그것이 건강한 퇴사든, 개선된 근무환경이든 서로가 납득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기 위한 첫 단추다.
다리의 이름은 '말하기'다. 그 말은 피곤한 민원도, 강한 주장도 아닌 “내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유연근무제는 모두를 위한 제도가 될 수 있을까?
유연근무제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이 구성원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신뢰를 구축하고, 어떻게 성장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는 태도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는 대답이 가능하려면, 그 앞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동의, 대화, 존중이다.
근무조건을 지키는 일은 단지 법을 따르는 것을 넘어, 서로를 지키는 일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
유연함이란 결국, 서로를 존중하는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제는 묻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